어머니를 떠나보내던 그날의 기억이 또렷하면서도 희미합니다.
너무 갑작스럽게 곁을 떠나셨지요.
쉰두 살,
아직은 너무 젊으셨던 분이었기에 믿기지 않았고,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.

정신이 혼미했고,
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.
그저 휴대폰을 붙잡고 '장례'를 검색하다 가장 먼저 눈에 띈 번호로 전화를 걸었습니다.
그곳이 바로 예담라이프였습니다.
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.
목소리가 떨리고, 말이 자꾸 끊기고,
제대로 설명도 못했을 겁니다.
그런데도 예담라이프 장례지도사님은 제 혼란과 슬픔을 단번에 알아채셨는지,
차분하고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.
“천천히 말씀주셔도 괜찮습니다. 지금은 많이 힘드실 겁니다.
어머니의 마지막 가시는 길 제가 함께 돕겠습니다.”
그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.
그 한마디가,
아무 준비도 없이 혼란 속에 있던 제게 조금은 다행이라는 안도감을 주었습니다.
빈소 준비부터 입관, 발인까지 예담라이프는 처음부터 끝까지
한 분의 장례지도사님이 전담하여 함께해주셨습니다.

가족장으로 조용히 모시고 싶다는 저희 뜻을 먼저 헤아려 주셨고,
제사를 생략하고 간단한 조문 인사만 드릴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습니다.
입관식 때는 정말 힘들었습니다.
어머니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순간이 다가오자 저와 누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습니다.
장례지도사님은 저희 손을 꼭 잡아주시며
“지금 아니면, 영영 마지막 인사를 못 하실 수 있어요”
라며 조심스럽게 저희를 이끌어주셨습니다.

한 분씩 조용히 인사를 나누게 해주시고,
관꽃도 정성스럽게 더 준비해 주셔서 어머니에 대한 우리의 마음이 제대로 전해진 것 같아 감사했습니다.

발인 날 아침,
어머니의 마지막 길을 지켜드리기 위해 지인들이 함께 모여 운구를 도와주었습니다.
예담라이프에서는 전날 모든 서류와 후속 절차까지 꼼꼼히 정리해주셔서
저희 가족은 오직 어머니와의 마지막 시간을 온전히 보내는 데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.
그리고 그날 처음 ‘유품정리’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.
장례만으로도 벅찬 상황에서,
어머니가 쓰시던 물건들을 우리가 직접 정리할 수 있을까 막막했는데
예담라이프 장례지도사님께서 유품정리라는 서비스가 있고
직접 운영하고 있어 담당자 연결해주실 수 있다고 안내해 주셨습니다.

예담라이프에서는 전날 모든 서류와 후속 절차까지 꼼꼼히 정리해주셔서
저희 가족은 오직 어머니와의 마지막 시간을 온전히 보내는 데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.
그날 이후 생각해보면,
예담라이프가 없었다면
어머니의 마지막 길을 이렇게 조용하고 차분히 모실 수 없었을 겁니다.
그 혼란스러운 순간,
우리 마음을 먼저 알아주고, 어떤 선택이 가장 나은 길인지 차분히 이끌어준다는 건 정말 큰 힘이 되었습니다.

담당해주셨던 본부장님 감사합니다.